강변북로를 따라 도로를 달리며 시시각각 변하는 서울의 모습을 보며새삼스레 이 도시를 즐기는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새벽의 안개 낀 도시의 희미함, 안개가 걷히고 난 뒤 햇빛을 가득 담은 강물의 일렁거림, 청명한 하늘과분홍빛으로 달아오르는 두근거림, 그리고 어둠이 내리고 난 뒤 도시를 가득채우는 불빛의 고요함까지. 한강을 품은 서울은 날마다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박기범 작가의 <서울등>은 서울의 가장 중심이 되는 노들섬을 배경으로 한다. 동작구와 용산구를 가로지르는 노들섬의 한가운데, 서울의 대표적 상징 중 하나인 한강대교 사이에 커다란 등을 하늘에 띄우는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서울등>은 커다란 구의 형태로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달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단순한 형태에 높은 주목도를 가진 이 구조물은 직관적이고 강렬한 시각적 존재감을 지닌 랜드마크형 설치물로 계획되었다. 약 15m의 높이로 제작될 예정인 본 설치물은 동쪽으로는 반포, 서쪽으로는 여의도와 마포에서도 바로 보이며 서울을 횡단하는 강과 북의 대로를 끼고 있다. 크기와 위치, 가시성의 측면에서 서울의 좌표적 기능을 하게 될 <서울등>은 공공미술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쉽고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일상의 풍경에 떠오른 커다란 빛은 평범함을 낯설음으로 변화시킨다. 3차원의 커다란 물체는 낮에도 지지않는다. 낮과 밤 모두 일정량의 빛을 발광하도록 조정되어 표면에 명암을 남기지 않는다. 이로써 3차원의 구는 2차원의 평면이 되어 관람자에게 인식된다. 3차원으로 이루어진 이 도시에서, 2차원이 평면이 존재함으로 생겨나는 기이함, 낮에도 지지 않는 빛을 바라보는 이질감은 모두 도시를 소요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공유하는 체험의 장으로 인도한다. 이를 두고 작가는 서울 한복한의 상공에 떠오른 “아름다운 이물질“로서 도시를 인식하는 경험에 대해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된다고 설명한다.
서울을 동과 서로 가로지르는한강의 한가운데,남산에서 관악산까지 이르는 남과 북의 축 가운데에 위치한 <서울등>의장소성은 도시를 경험하는 방식에 대한 다양한 요소를 증폭시키는 요소가 된다. 도보에서부터 자동차, 때로는 비행기에서 까지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은 관람자가 위치한 곳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진다. <서울등>은하나의 조형물을 넘어서서 마치 등대처럼 가야하는 곳, 내가 지금 위치하는 곳을 가늠하게 하는 역할 수행하며, 한강철교, 도시의 빌딩, 산의 능선 등 다양한 지리적, 환경적 위치가 중첩되며 도시 이미지를 재생산해내는 매체가 된다.
그리고 다시 <서울등>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돌아가본다. 누군가에게는 집에서 매일 보는 풍경을 다르게 하는 기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한강을 거닐며 어딘가 슬픈 기분이 드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 빛이 비추던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매개가 될 것이다. 그 빛이 없던 어제와, 빛나던 오늘,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고 난 뒤추억이 되는 그 모든 순간까지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기억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일상을 비트는 둥근 빛, 그 빛은 삶을 다시 비추며 도시 위에 놓인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